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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vus Amorː
[15.08.17] 「네가 없었더라면」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안녕하세요." "흐아- 안녕. 요한." 요한의 붉은 눈이 화원을 지그시 보았다. 보통 이렇게 보면 화원은 요한 특유의 눈빛에서 불쾌함을 느껴 견제하지만 지금은 막 일어나서 제정신이 채 들기 전인지라 그저 맘대로 하도록 내버려두고 있었다. 그래서 요한은 그가 원하는 무언가를 드디어 볼 수 있었다. 역시 지금도 이 사람은 누군가에게 원망과 사랑을 동시에 받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요한 자신은 화원을 사랑하며 원망하는 누군가를 추론할 수 있었다. 역시 변함없는데, 무엇을 생각하는 것일까. 요한으로서는 다원의 생각을 알 수 없었다. 《내 말대로 해 주면, 네 소원을 들어줄게. 요한.》 화원을 지켜본다, 단지 그 일만을 수행하는데 ..
[15.08.04] "이제 곧 끝나가는데, 만나면 안되?" "안됩니다. 그런 내용의 계약이잖아요. 평생을 만나지 않겠다는…" 다원은 리아의 거부반응을 듣고는 한숨을 쉬며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리아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설래설래 돌리며 방을 나갔다. 그와 동시에 리아가 눈치채지 않게 들어온 이가 있었다. "그런 약속 아무런 리스크 없이 깰 수 있잖습니까, 5월." "…2월?" 막 누웠던 다원은 놀라면서 말을 건 이를 바라보았다. 토끼같은 붉은 눈, 삐죽삐죽 한쪽 방향으로 뻗은 청록색 머리카락, 검은색 신사 모자. 흰색 프릴티셔츠에 검은색 베스트, 검은색 바지를 입은 소년이 무표정을 지으며 검은색 책을 안고서 다원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너, 언제…" "이런 귀찮은 일 하지 않아도 당신은 가능할텐..
[15.07.25] 한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아무런 능력도 없는 능력자이다.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뿐이었으나, 살아있는 사람으로 어떻게 아무 것도 안할 수 있을까. 숨 쉬다가도 호흡곤란이 찾아오고, 아무런 걸림돌이 없는 평지에서조차 걸핏하면 쓰러지고, 무언가 집으려고 하면 다른 사람이 가져간다건가 그 물건을 쓸 수 없게 만들고, 심지어는 무엇을 먹는데도 손이 미끄러져 음식물을 다 쏟는 경우는 일상다반사였다. 그 덕분에 부모조차 그 사람에게서 멀어진 지 오래였다. 또 다른 한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생각할 수 있는 그 모든 일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반인이다. 그가 손대는 것은 무엇이든 더 나아진 상태 아니 한발 더 앞선 형태가 되는 것은 당연하였고, ..
[15.07.19] 아. 오늘이 일요일이었구나. 하고 조용히 깨달아버리는 자신에게 혐오를 느낀다. 특별하지도 않은 일상에 증오마저 느끼는 감각과 닮아 더욱 더 화가 치밀었다. 삶이란 모두 그런 것일까. 아아, 죽어가는데 무슨 생각이람. 눈을 지그시 감는다. [15.07.20] 소년이 자신의 작은 여주인의 말을 따르지 않은 적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라며 마음을 단단히 잡고 하루하루를 살아갔으나, 세상이 자신 맘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 소년은 자신의 작은 여주인이 내린 명령과 이 집의 실질적인 주인이며 자신의 실질적인 고용주인 여백작에게서 내려온 명령은 너무나도 다른 내용인데다가 같이 실행할 수 없는 것이었가에 고민하고 있었다. 물론 보통 하인이라면 실질적인 고용주인 ..
[15.07.13] "죄송…합니다." "…" 푸른머리 소년관 검은 머리 소녀, 두 사람 사이에는 싸늘하고 차갑기만 한 무거운 공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소년은 죽을 죄를 지은 것 마냥 붓고 텨져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 하지 않은 채 양쪽 손이 터져라 바짓가랑이를 잡고 있었고 고개조차 떨구고 있었다. 소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테이블을 보았다. 서류가 흐트러지고 홍차는 엎어질 대로 엎어졌으며 그와 같이 가져온 쿠키들은 바닥에 널부러져있었다. "중요한…건데.." 하지만 소녀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홍차를 담고 있던 티포트였다. 소녀에게 그 티포트는 죽은 유모가 남겨준 유일한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소인…청소도구를 챙기러 다녀오겠습니다." 소녀의 허락을 기다리지 않고 소년은 재빨리 문을 나섰다. 소녀는 ..
[15.07.09] 샤워 후엔 맥주가 제맛이지, 하며 냉장고에서 캔맥주을 꺼낸 후 그 자리에서 캔뚜껑을 따서 들이키고는 쇼파에 몸을 내던졌다. 심심하기도 했고 마침 손이 뻗히는 곳에 리모컨이 있는 까닭에 TV를 틀어봤다. 아무리 채널을 돌려도 볼 것이 없자 TV를 껐다. 후, 하고 한숨을 쉬며 손에 들고 있던 캔맥주를 들어 마신다. 인생, 왜 이렇게 보잘것 없어졌지. 한 모금 한 모금 목을 넘길 때 마다 후회해본다. 후회한들 가버린 시간이 돌아올 것은 없었지만서도. "젠장..." 다시 그리워지려고 한다. 오늘 밤만 넘기면 되는 것을 기어이 넘길 수 없다는 듯 핸드폰을 잡아 번호를 누른다. [15.07.11] 언제나처럼, 그녀는 한밤중에 눈이 떠졌다. 집을 나오고 나서부터는 간헐적으로 밤에 자다가 깨는 경..
[15.07.01] "시즈." 아이는 어느 때와 다름 없이 무미건조한 눈으로 보며 회청색의 긴 머리카락을 침대에 무질서하게 흐트려 놓은 채로 누워 있는 시즈를 조용히 불러보았다. 시즈는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않은 채로 쌀쌀맞게 '아아, 아이구나'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아이는 그런 시즈를 나무래지 않고 침대 한켠에 앉았다. "…그리워?" "뭐가?" 시즈는 아이가 무슨 뜻으로 말 하는지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알고서도 모르는 채 하는 것인지 여전히 쌀쌀맞게 대꾸하였다. 아이는 그런 시즈의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손을 뻗어 시즈의 새하얗고 봉긋한 가슴에 손을 대었다. 그 행동에 시즈가 자극이 되었는지 움찔거렸지만 곧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가끔은…미치도록 그리워. 이상하잖아..
[15.06.24] "너희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구나" 그는 피가 이마에서 흘러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름끼치도록 무섭고 아름답게 웃었다. 듣는 이 하나 없어도, 그 듣는 이들은 이미 시체가 산이 되어 피를 쏟아내고 있었음에도 그는 그 시체산 위에 앉아 가소롭고 황홀하게 말을 이었다. "이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니, 정말로 안타깝구나" 멀리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는 멈출 줄 몰랐다. [15.06.25] 이것이 최선의 길일까? 그럴 리가 없잖아 바-보. 그렇다면 너는 어디에 있는 거야? 어디에 있는지 나도 모르지. 으-음. 그렇네. 하지만 난 이렇게 서로가 안 보여서 괜찮지 싶은데. 어싫어싫어싫어싫! 나는 꼭 널 봐야겠어! 그러고선 치사하게 자신만 숨는다? 왜냐면 너보다 내가 더 잘났..
[15.06.19] 화원은 어느 샌가 자신의 무릎에 앉아 맛있는 식빵을 구우며 잠을 청하고 있는 고양이를 기쁘다는 듯이 가늘게 눈을 뜨고 미소지으며 손으로 천천히 털결을 따라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고양이는 그런 화원의 손길이 좋게 느껴졌는지 고양이 특유의 그르렁그르렁, 편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친해졌네. 고양이랑." 맞은 편에 앉아서 아랑곳하지 않고 책을 묵묵히 읽던 다원은 책 한권을 다 읽었는지, 테이블에 책을 내려두고는 몸을 일으켜 화원 옆자리에 고양이가 깰까 조심스레 앉는다. "어, 질투?""그런 거 아냐." 다원은 테이블에 있던 다른 책 한 권을 집어 들고는 화원의 어깨에 머리를 가볍게 기대었다. 화원은 다원이 그대로 책을 읽겠지 싶어 손에 닿는 곳에 있는 쿠션을 주려고 고양이를 쓰다듬..
[15.06.13] 그만 놀라고 말았다.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곁에 있었기 때문에 몰랐지만. "이거면 됐어?""어... 응." 언제부터인가 힘이 세지더니, 이제는 나보다 키가 커졌다. 아. 그렇구나. 너...남자였지. [15.06.14] '엄마아... 아빠아..!' 세나가 무너졌던 것은 우리가 13살이 되던 해 그녀의 부모님이 불의의 사고로 같이 돌아가셨을 때 한번이었다. 그 때 이후로 나는 그녀에게 고백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내가 언제나 곁...''응. 랩. 내 곁에서 떠나지 말아줘..!' 잃어버린 것이 너무 커서 감당하기 힘들어진 몸으로 끈적하게 매달려오는 그녀에게 이 관계를 끓는 말 같은 것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설사 다른 남자가 그녀를 데려가 행복해도 나는 지켜보는 길을 택하였다. 그..